구 경 서 박사

마음이 심란하면 가끔 들리는 곳이 있다. 하남에서 팔당대교를 건너 우회전 하여 5-6킬로미터를 달려가면 마재(마현골)가 나온다. 이곳에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다. 다산의 생가와 그의 묘, 그리고 기념관과 박물관까지 다산을 기리는 이곳에 들리면 복잡했던 머리와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다산은 수백 권의 저서를 남겼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고 널리 알려진 책이 목민심서(牧民心書)이다. 목민관이 가야 할 길을 조목조목 밝혀 놓은 등대와 같은 책이다. 그래서 행정 공무원이나 법조계 인사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 책을 대부분 일독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전에 읽었던 목민심서를 다시 꺼내 읽는 것은 내 마음에 무엇인가 꺼려지는 것이 있어서 일 것이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읽어대는 신문에서는 부정과 부패가 하루가 멀다하고 1면 톱으로 올라온다. 우리 사회의 도탄과 일탈이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된다. 이른 새벽부터 우리 사회의 얼룩진 민낯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도 복잡해지고 마음도 아파진다.

어디 나뿐이랴!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정의(正義)가 무엇인지, 이웃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를 되살펴볼 겨를도 없이 우리 사회의 일상이 망가지고 있으니 대부분의 시민들의 마음도 좋을 리 없다. 가슴도 아플 것이다. 이럴 때 목민심서를 다시 꺼내 드는 것은 어떨까? 굳이 완독이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빈손에 목민심서를 들고 있으면 된다. 한줄 한줄 목민심서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다산의 목소리가 손의 맥박을 통해 들려온다.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

내가 읽는 목민심서는 1972년에 이을호 선생이 번역해서 현암사에서 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산은 첫 마디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다른 벼슬을 하겠다고 나서도 좋지만 목민관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임관이 되거든 재정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부임 절차에 따르는 경비는 절약할 대로 절약하는 것이 좋다. 부임 여비를 국비로 받아 놓고서 게다가 딴 몫을 더 받는다면 이는 국가의 은혜 없이 백성들의 주머니를 터는 셈이니 할 짓이 아니다”

다산은 목민관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첫 문장에서 모두 말하고 있다. 오직 백성만을 생각하는 다산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성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그의 주장이 오늘 다시 우리 귀를 때리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다산의 생각과 달리 정반대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 아닐까? 오늘 아침에 노랗게 바랜 목민심서를 빈손에 다시 들고 있다.

                                                         구경서<정치학박사 · 전 강남대 겸임교수>
                                                                                            kooks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