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남시 작은 도서관 #
푹푹 찌는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오후 2시, 아이들이 하나 둘 찾아와 서가에 꽂힌 책을 빼들고 조용히 자리에 가 앉는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무더위를 식혀주는 바람 소리보다 시원하게 들린다.
가끔 형제끼리, 자매끼리, 오누이끼리, 아니면 친구끼리 와서 무언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조용히 책을 읽는 분위기는 어쩌지 못한다. 옛 선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중의 하나로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를 꼽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바로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 이야기다. 하남시에 있는 아파트중에서 상당수의 아파트가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관장으로 있는 에일린의뜰 아파트의 ‘에뜰작은도서관’도 지난 7월6일 개관하여 이제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 도서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도서는 아파트 건설업체에서 기증한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물론 청소년과 성인들이 읽을 만한 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책은 앞으로 채워 나가면 된다. 문제는 운영비 부족으로 도서관 운영 시간이 오후 2시부터 6시로 하루 네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도서관을 개관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도서관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서두에 기술한 것처럼 짧은 개관 시간이지만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찾는 발길이 한 사람이라도 계속되는 한 도서관의 문을 닫을 수 없다. 이는 우리 에뜰작은도서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하남시의 문제이다.
이와 관련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하남시장을 비롯한 도의원, 시의원 등 출마자들이 ‘하남시를 어떻게든 시민이 행복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쏟아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시장 후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명품 하남’ ‘품격있는 하남’을 강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김상호 시장(더불어민주당)이 어떻게 ‘명품하남’을 만들어 갈 것인지 주목된다.
‘명품 하남’은 어떤 모습일까.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문화적 품격이 있는 하남시의 모습이다. 그 여러 가지 문화적 실체중 하나가 작은 도서관이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길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기특한가. 얼마나 뿌듯한가.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렇게 말해놓고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 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고 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다시 한 번 하남시의 특별한 관심을 기대하며 우리 에뜰작은도서관 개관식에서 인사말로 대신했던 자작시를 옮긴다.
나, 도서관에 가!
-장 지 헌-
외출하려고 집을 나서는 나에게
아내가 묻습니다 "당신 어디가?"
"응 도서관에 가"
아내는 도서관에 간다는 말에 더 이상 뒷말이 없습니다.
은퇴한 백수는
꼭 그래서 도서관에 가는 건 아니지만
도서관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손짓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별의별 생각을
내 입맛대로 맛볼 수 있지요
같은 말도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지
어쩜 그렇게 귀에 쏙쏙들어오게 하는지
하루에 수 천 수 만리를 왔다갔다하고
높은 산 깊은 강도 내 맘대로
다닐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수 천 수 백년 전 사람도 만나고
온갖 희한한 살아있는, 또한 말없는
모든 것과도 대화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어디 그뿐인가요
설렘도 있습니다
사랑도 있습니다
눈물도 있습니다
아내도 그것을 아는 게지요
도서관에 간다는 것
그것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간접 경험을 쌓는 것이지만
사실 내 이야기를 하러 가는 것이기도 해요
내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내 이야기를 쓰러 가는 것입니다
서가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내 아내가
서가에 꽃인 내 책을 뽑아볼 그날을
꿈꿔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