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필자는 지역주민의 무관심과 지방정치의 부패가 서로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면서 진정한 지방자치 구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번에는 이렇게 시민참여가 미흡한 상황에서 지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이들이 지역의 부패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살펴보자.

‘지역을 이끌어간다’는 말은 보통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지방자치가 발달했던 미국에서 지역을 실제로 이끌어가는 사람 또는 세력에 대한 연구가 많이 행해졌고, 다양한 결과가 나왔다. 대표적인 것으로 지역 정치인, 토착 경제인, 그리고 토착 경제인에 종속된 지역언론이라는 3자가 ‘지배연합’을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 (2) 지역개발을 원하는 세력이 지방선거를 통해 지자체를 장악하고 이끌어간다는 ‘성장기구’ 이론 (3) 지자체장의 압도적 권력이 시의원이나 기업인, 행정관료 등과 먹이사슬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 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시민이나 시민단체가 지역을 이끌어간다고 보는 이론은 없다는 것이다.

하남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

하남을 생각해보자. 하남시는 1990년대 시작된 ‘하남신장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시작으로 2000년대에는 ‘풍산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도시화가 진행됐다. 2008년부터는 중앙정부의 국책사업으로 위례, 미사, 감일지구가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지역현안사업 으로 추진되는 도시개발사업도 오는 2020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사업 추진 주체가 중앙정부 또는 지자체라도 도시의 틀을 만드는 이런 대규모 개발 사업에서 시민이 의견을 내고 참여할 여지는 거의 없다. 시민은 다만 토지보상 과정에서만 고려의 대상일 뿐이다.

이뿐 아니다. 생각해보면 지역에서 큰 갈등을 일으키거나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은 거의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일들인데, 여기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천현동 일대 그린벨트 해제문제, ‘축구장 70배 크기’라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했던 스타필드 하남, 지역상권 붕괴를 우려하게 하는 코스트코 입점 문제, 그리고 선거 때만 되면 온갖 장밋빛 소설의 대상이 되는 미사섬 개발까지, 지역에 실제로 살고 있는 시민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던가.

그럼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은 누가 왜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일까? 먼저 시장 및 시의원 등 지자체 정치인을 생각할 수 있다. 늘 재원부족에 시달리고, 중앙정부처럼 세금을 더 걷을 권한도 없는 지자체로서는 부동산 개발을 추진해 얻어지는 개발이익과 사업을 통해 늘어나는 인구와 산업시설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규모가 커지면 세수확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당연히 땅을 가진 부동산 소유주를 생각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은 자신이 소유한 자산의 가치를 올리는 일이니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노리는 기업이 부동산 개발을 추진할 것이다. 코스트코 코리아나 신세계 같은 기업들이 개발의 주요 주체임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사업 추진이 과연 공공정책으로써 민주성과 투명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역정치인, 토지소유주, 기업이라는 개발 트로이카의 정책추진이 복마전(伏魔殿)에 가깝다는 것은 우리 모두 익히 하는 바 아닌가. 민선1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사법처리된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이 1300명을 넘는다는 행정자치부 발표는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난개발의 대표적 사례로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업은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시민 참여를 이루는 길

그렇다면 이를 극복할 시민의 참여는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필요하지만 없는 제도는 새로 만들고, 좋은 제도는 적극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주민발의제도를 활용해 시민의 조례제정이나 개폐청구를 할 수도 있고,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이용해 주민의 의사를 예산에 반영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지역의 중요한 공공문제를 시민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민투표제나 주민소환제, 주민 감사청구, 주민소송 같은 제도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마련돼 있다. 주민 동의 없이 무리하게 화장장 유치를 추진하다 하남에서 전국 최초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됐던 일은 아직도 하남 시민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거버넌스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가이 피터스(Guy Peters) 미국 피츠버그대 정치학과 석좌교수는 지난 6월 23일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촛불혁명 이후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촛불혁명에서 보여준 시민의 참여가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도록 시민의 참여를 구조화, 정례화,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도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통하며, 도시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공공정책을 위해 전국의 226개 지자체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하남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적이고, 투명한 공공정책은 어렵다. 다음에는 (1) 역대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비교하고, 하남시에 미친 영향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2) 시민 삶을 행복하게 하는 국내외 행복도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3) 행복한 지역,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 정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 호에 이어서 계속-